[기고] 주기만 하는 복지가 아닌, 이웃과 함께 공생의 통로가 되는 방법 찾아야 한다.
안성신문

[기고] 주기만 하는 복지가 아닌, 이웃과 함께 공생의 통로가 되는 방법 찾아야 한다.

▲안성시동부무한돌봄네트워크팀 강유미사회복지사

  

복지사 선생님은 나한테 뭘 줄 수 있어요?”

 

몇 해 전, 의뢰를 받고 처음 방문한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가 나에게 묻는다. 자녀의 질병으로 정밀검사가 필요하지만 병원비 마련이 어렵다고 한다. 상황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병원비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병원비 지원을 위해 자녀의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돈이 없는데도 꼭 정밀검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가난을 증명해야 검사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가난을 증명한 어머니는 거래를 하듯 더 많은 요구를 하였고 무리한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원성이 돌아왔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사회적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전국적으로 서둘러 맞춤형 복지팀을 신설하고 취약가구를 찾아 지역자원을 연계한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마을의 이웃을 다시 살피고 우는 아이에게 젖 주듯이 가난을 증명하는 복지 대상자에게는 서비스를 주기에 급급하다.

 

복지라는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한 단계 개선 된 서비스임을 상징하는 접미사처럼 사용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삶의 유지를 위한 선별적 사회복지를 떠올리는 시민 의식을 탈피하지 못한 현 시점에서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이웃들에게 복지대상자라는 틀을 씌우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한돌봄사업은 대상 가정의 구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동안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을 만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외에도 이혼, 방임, 가정폭력, 취업 지원 등 복합적인 문제를 가진 분들이 대다수이다. 우리기관에서는 복지 대상자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복지 이용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쓰는 단어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듯이 잠시 동안 우리기관을, 우리기관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살면서 기쁘고 행복한 순간, 좌절하는 순간, 나아가 다시 해보자!하는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까지 많은 순간들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당사자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손 내미는 그 순간에 손 잡아주며 동행하는 사회복지가 필요하다.

 

우리기관의 이용자 중 종결을 하고 간간히 전화 연락으로 소식을 전했던 한부모 가정이 있다. 당시에는 사회복지사의 손길이 없이는 가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몇 년 후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가족봉사단이 되어 나타나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어 보인다.

부모님의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축구선수라는 진로를 포기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좌절의 순간을 보낸 후 세상에 나오는 것이 두려웠던 은둔형 청년은 사회복지사에게 한턱 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웃에게 필요한 사회사업은 그들의 힘들고 시린 순간의 과정까지도 동행하며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복지사각지대가 없는 지역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취약계층과 위기가구라는 범주를 맞추고 주는사회복지와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의식을 경계해야 한다. 폭 넓게 함께하는 공생의 방법이 필요하다. 적어도 우리들은 복지 이용자와 지역사회의 공생의 방법을 고민하는 통로 역할이 되어야 한다.

당사자가 필요할 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파트너 사회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나 삶에 지치고 손길이 필요한 우리 이웃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겨울이 지나면 분명히 따뜻한 봄이 올 테고, 봄에는 당신이라는 영롱한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자신 있게 이야기 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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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5 [18:06]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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